links for 2008-07-04
존 로,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에 대한 노트: 배열, 전략 그리고 이종성〉, 1992

가끔 우리는 질서가 붕괴하는 것을 방관자로서 지켜보는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우리가 항상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조직이나 체계들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 또는 콘티넨탈 일리노이 은행 — 이 사라져 버린다. [구소련의] 인민 위원, 중요 인물 그리고 업계의 거물들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런 위험한 순간들은 정치적 전망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한다. 사회적 격동의 숨겨진 함정이 열릴 때 우리는, 세계의 주인들이 결정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갑자기 배운다.

어떻게 다르게 보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동안 뿐이라도, 어떻게 그들은 그 자신들을 우리와 다르게 만들었을까? 어떤 조직적 수단들이 그들 자신을 적절한 곳에 있게 했고, 그들을 보다 일찍 넘어뜨릴 수도 있었던 저항들을 극복하게 했는가? 우리는 어떻게 이것과 결탁할 수 있었는가? 이것들은 사회 과학의 몇몇 핵심적인 질문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이 글의 주제인 사회학에 대한 접근인,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의 중심에 놓여있는 질문들이다. 해석의 사회학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이 이론은 권력의 역학에 관심이 있다. 그것은 사실상 다른 사람들을 분석하려는 방법과 엄밀하게 동일한 방법으로 위대한 사람들을 분석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물론, 이 세계의 거물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분명히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거물들이 이 지구의 비참함에 대해서는 사회학적으로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주장하는 것은 이렇다. 만약 권력과 조직의 역학을 이해하고 싶다면, 설명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사실이라고 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편으로는 거시사회적 체계, 다른 한편으로는 파생한 미시사회적 세부의 잡동사니들이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좋은 생각이다. 만약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권력과 조직의 기원들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들의 대부분을 고립시킨다. 대신 우리는 깨끗한 과거와 함께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상호작용으로 시작할 수도 있고 상호작용이 모든 것이라고 가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후에, 어떻게 몇몇 종류의 상호작용들이 그 자신들을 안정화시키고 재생산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는지; 어떻게 그들이 저항을 극복하고 “거시사회적”이 된 것으로 생각되는지; 어떻게 그들이 이러한 권력, 명성, 크기, 범위 또는 우리 모두가 익숙한 조직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생각되는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의 핵심 가정 중 하나이다: 나폴레옹도 본질적으로는 3류 도박꾼과 차이가 없고, IBM도 본질적으로는 노점상과 차이가 없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크다면, 우리는 이것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 어떻게, 바꿔 말하면, 크기, 권력 또는 만들어진 조직을 — 연구하고 있어야만 한다.

이 글에서 이종 네트워크(heterogeneous network)라는 은유를 연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의 중심에 놓여있고, 사회, 조직들, 행위자들 그리고 기계들이 모두, 다양한(단지 인간만이 아니라) 요소들로 양식화된 네트워크에서 만들어진 결과들이라고 제시하는 방법이다. 그 다음으로는 네트워크 통합, 그리고 특히 네트워크가 어떻게 단일한 점의 행위자들처럼 보일 수도 있는지를 고찰한다: 바꿔 말하면, 어떻게 영국 정부를 구성하는 모든 잡동사니들을 말하기보다는 때로는 “영국 정부”에 관해 말할 수 있는냐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네트워크 배열의 특성을 조사하고, 그 특성을 명사(noun)라는 기정 사실로 보기보다는 — 저항을 극복하는 다소 불확실한 과정으로 — 동사(verb)로 보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네트워크 배열의 요소들과 전략들을 논의하고,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의 조직적으로-중요한 몇몇 결과들을 설명한다. 특히, 양식이, 계급과 권력을 포함하여, 제도적이고 조직적인 결과들을 만들어 낸 몇몇 방법들을 고찰한다.

(John Law, Notes on the Theory of the Actor Network: Ordering, Strategy and Heterogeneity, 1992의 도입을 번역했음. PDF 문서임.)

links for 2008-07-03
모튼 래스크, <위키피디아의 도달범위와 풍요로움: 위키노믹스는 부유한 나라들만을 위한 것인가?>, 2008

요약
이 연구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에서 위키노믹스가 전지구적으로 확산하는 것에 영향을 미친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요인들을 조사한다. 위키피디아의 다양한 언어판들을 조사함으로써, 이 연구는 사회경제적 요인들의 다양성과 위키피디아와의 연관 사이의 중요한 상관 관계를 발견했다.

도입
만약 ‘마이크로소프트’가 정보기술 기반 사회의 전지구적 개발의 아이콘이고, ‘아마존’과 ‘이베이’가 전지구적 전자상거래의 아이콘들이라면, ‘위키피디아’는 급속히 웹 2.0의 전지구적 아이콘이 되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흔히 웹 2.0의 전형으로 사용되고, 웹 1.0의 사례로서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온라인’과 비교된다(Baumann, 2006; Benkler, 2006; O’Reilly, 2005; Tapscott and Williams, 2006). 브리태니커 온라인은, 전통적인 학술 서적이 출판되는 방법과 거의 동일한 방법으로, 선별된 전문가 집단에 의해 쓰여지고, 편집되고, 출판된다. 위키피디아는 기고자에 대한 제한이 거의 없고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는 계속적으로 변경되는, 사용자가 추가하는 콘텐트로 만들어지는 백과사전이다. 웹 2.0 이전에, 백과사전적인 정보의 교환은 대개 단방향이었다.

그렇지만, 웹2.0의 특징들인 개방성, 동료간 생산(peer production) 그리고 전지구적 상호작용과 협력 때문에, 위키피디아의 콘텐트는 면밀히 연구되고 분석되었다. 예를 들어, 위키피디아의 표제어들의 정확성에 대한 활발한 논쟁이 있었다(Economist, 2006a; Economist, 2006b; Economist, 2006c; Economist, 2006d; Giles, 2005; Korfiatis, et al., 2006; Tumlin, et al., 2007). 일반적인 논쟁은, “아마추어들”이 만든 표제어들을 “전문가들”이 만든 동일한 제목들에 대한 글을 비교하여, 전달성과 객관성을 포함한, 그것의 정확성에 초점을 맞추었다(Anderson, 2006; Benkler, 2006). 위키피디아(2006) 자체에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여느 단체가 만든 참고자료와 마찬가지로, 위키피디아의 콘텐트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내용을 다수의 출처들과 대조해서 확인해 주시고, 추가 정보는 우리의 책임한계를 읽어주십시오.” 그 결과, 위키피디아 항목들의 권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 연구 이용을 개방하는 참고자료와 인용을 늘리자는 제안이 나왔다(Willinsky, 2007).

참여는 모든 웹 2.0 서비스의 성공에 결정적이다(Dye, 2007). 위키피디아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콘텐트에서 문화적 차이점들 — “물리적 세계에서 관찰되는 문화적 차이점들이 가상적 세계에도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제시한다”(Pfeil, et al., 2006). — 을 발견했다. 바꿔 말하면, 누구나 위키피디아에 참여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에 참여하는 수준들을 조사하기 위해, 선진국들에서 만들어진 위키피디아 판과 개발도상국들에서 만들어진 것들을 비교하는 것을 선택했는데, 기술적인 그리고 경제의 거시-환경적인 요인들의 다양성 때문에 개발도상국들에서의 참여는 고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Kraemer, et al., 2006).

(Morten Rask, The reach and richness of Wikipedia: Is Wikinomics only for rich countries?, 2008의 요약, 도입을 번역했음.)

인터넷 역시 재밌다, 쇼난비치FM

인터넷은 역시 재밌다. 우연한 발견을 할 때 특히 재밌다. 어제 한겨레 매거진 Esc를 (RSS 리더로) 뒤적거리다, 기사 같지 않게 짤막한 “나의 톱5“을 봤다. ‘순위’에 대한 최고의 영화가 되어버린 <하이피델리티> (근데 이거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이름으로 적어줘야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로.) 뭐 시시껄렁한거 하나 썼나보다 하고 봤는데 (역시 순위는 힘이 세다. 이렇게 묶어놓으면 눈을 뗄 수가 없다. 대단한 것들로 변해 버린다.) 대부분 주워들은 것들이었으나, 일본의 라디오 방송 “쇼난비치FM”이라고? 궁금증 유발. 바로 구글로 검색.

일본 유학원 자료를 거쳐 어찌어찌 방송 홈페이지를 찾았다. 영어 홈페이지도 있어 다행이었다. 아, 게다가 인터넷 방송도 제공한다. 왼쪽의 “리슨 나우!” 버튼을 클릭하니, 일본의 몇몇 FM 방송을 제공하는 페이지(시뮬 라디오?)로 이동하고, 거기서 “湘南ビーチFM Shonan Beach FM”을 찾아 들었다. 주로 트는 음악은 재즈이고, 하와이 음악, 아르앤비, 클래식 음악도 튼댄다. 외국 FM은 디제이 멘트 별로 없이 음악을 많이 틀어서 좋다. (중간중간 들려오는 영어 내용으로 짐작컨대) 멘트 내용도 대부분 음악에 관한 것인듯.

아마도 쇼난 비치가 유명한 해변인거 같은데, 음악도 그에 맞춰 들려주는 거 같다. 우리나라도 동해안 등의 해변에서, 마포FM과 같은 그 지역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이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들려주면 뭔가 지역의 분위기랄까 색깔 같은 것이 생겨나지 않을까? 해수욕장에서 뿐만 아니라, 이동하는 차 안에서, 숙소에서, 길가에서 그 지역과 계절에 맞는 음악이 계속 흘러나온다면 그 곳에서의 추억은 음악과 함께 오래오래 기억될거다. 음악 한 소절이 아주 오랜 추억도 끄집어 올리니까. 그게 음악의 힘이지.

오랜만에 정신줄 놓고 서핑해봤다. 인터넷이 다시 재밌어지고 있다.

존 홀덴, <로그온하기: 문화, 참여 그리고 웹>, 2007

이 보고서는 세 가지 추세가 수렴하는 것을 살펴 본다.

  • 기술적 변화
  • 사람들이 문화에 관여하는 방법
  • ‘닿기 어려운’이라고 표현되는 사용자들에 대한 특수한 고려와 함께, 문화에서 증가하는 민주적 참여의 정책적 목표

이러한 추세들의 공통점은, 수동성에서 참여로, 단방향의 흐름에서 쌍방향성으로, 그리고 소수에서 다수로의 움직임이다. ‘컬쳐 온라인(Culture Online)’은, DCMS(Department for Culture, Media and Sport)가 설립하고 투자한 계획(initiative)인데, 이렇게 쟁점들이 수렴하는 공간에서, 초기의 성공적인 혁신자였다.

컬쳐 온라인은 2007년 3월에 종결되었는데, 이 보고서는 컬쳐 온라인이 평가하거나 의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보고서는 새롭게 출현하는 웹 기술이 문화에 대한 대중적인 참여를 어떻게 늘릴 수 있을것인가를 밝히기 위해 컬쳐 온라인의 경험으로부터 지혜들을 이끌어 내려고 했다.

디지털화는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그것은 대중이 상품들에 대해 주문형(on-demand)이고, 언제나 이용할 수 있고, 개인화된 이용을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디지털화는 또한 — 전문가들이 마치 무엇을 생산하고, 무엇을 보여주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리인[게이트키퍼]처럼 행동한다는 의미에서, 문화에 대한 대중의 접근을 감독하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인 — 문화 영역의 전문가들이라는 가정에 도전했다. 아날로그 세계에서, 대중은 전문가와 프로페셔널들이 정해놓은 조건에 따른 문화에만 관여할 수 있었다: 콘텐트, 가격, 형태, 타이밍 모두 생산자에 의해 결정되었다. 무한히 복제할 수 있고 조작할 수 있는(manipulable) 디지털 콘텐트의 세계에서, 이것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문화 영역에 대한 이것의 완전한 함축들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대형 사업자들이 걱정하며 혼란스러워하고, 최대한 많은 ‘권리들’에 매달리려고 하고 있다. 한편 ‘아마존’부터 ‘BBC’, ‘위키피디아’까지, 사적, 공적 그리고 제3의 영역의 혁신들이 냉혹하게 진행되고, ‘세컨드라이프’와 ‘마이스페이스’ 같은 인터넷 현상들이 몇 달 동안의 공간에서 전망을 급격히 바꿔놓았다.

인터넷의 간략한 역사에서, 문화 영역은 두 개의 관련된 경로를 따라왔다: 한편으로는, 콘텐트의 디지털화와 정보의 제공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표현을 위한 상호작용성과 기회들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이원적 대립으로 본다. 진실은 그것들이 냉혹하게 융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다음으로 가는 곳이 어디냐는 것이다. 정책적 개입이 보다 민주적인 문화를 가져오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기술을 어떻게 가장 잘 충족시킬 수 있을까?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서 무엇이 온라인 문화의 역할, 기회, 한계가 될까? ‘컬쳐 온라인’ 프로그램은 여기서 사례 연구로서 그리고 보다 폭넓은 반영을 위한 출발 지점으로서 모두 사용된다.

이 보고서는 5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제1장은 온라인 문화에서의 최근 전개된 맥락에 ‘컬쳐 온라인’을 놓고, 프로그램의 개요를 제공한다. 제2장은 그것의 전달로부터 배운 몇몇 실제적인 가르침들을 강조한다. 이 서론의 배경 설명과는 달리, 제3~5장은 온라인 문화의 항상 전개중인 개념, 기능 그리고 가능성, 정책 개발 관점에서의 현재와 미래, 사회에서의 기술적 변화와 개발을 숙고한다.

(John Holden, Logging On: Culture, participation and the web, 2007의 도입 부분을 번역했음. 전체 문서는 링크한 페이지에서 PDF로 제공되고 있음.)

다이스케 오카베 외, <카메라 폰 사용의 일상적 맥락들: 기술사회의 민속학적 틀을 향한 단계들>, 2006

당신이 한동안 보지 못한 친구, 반려동물의 사랑스러운 눈맞춤, 토쿄타워, 우습게 생긴 팬더, 새로 문을 연 카페의 멋진 파르페, 방금 웅덩이에 빠진 급우, 입 한가득 숟가락을 물고 있는 어린아이, 또는 비행기 트레이 위의 소형 우유 포장 — 카메라 폰이 사람들, 장소들, 반려동물들 그리고 일상 생활의 흐름 속에 있는 사물들의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도시 여기저기, 그리고 특히 관광지에서, 카메라 폰의 셔터 소리는 주위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 되었다. 카메라 폰이 최근에서야 일본의 일상 생활에서 정착물(fixture)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익숙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카메라 폰은 평범한 것이 되어버린 가장 최근의 휴대용 미디어 기술이고, 일본의 도시에서 우리 일상의 경험을 덧씌우고 있는, 층을 이룬 정보와 미디어 생태계의 추가적인 구성 요소이다.

이 논문은 토쿄에서의 카메라 폰 사용에 대한 민속학적 연구 보고인데, 사용 양식의 연구 일지에 기반하고 있다. 첫째로, 일본에서의 카메라 폰 채택의 현재 상태를 간략히 기술하고, 이 연구를 위한 우리의 방법론과 개념적 틀을 소개한다. 우리는 이 연구를, 실재적이고 가상적인 환경들에 걸쳐 분포된 일상의 행동들에 대해 전통적인 인류학적 접근을 적용하는 사례로서 틀을 잡는다. 이 논문의 본문은 일본에서의 카메라 폰 사용의 창발적인 행위들을 기술하는데, 그것은 민속학적 자료들로부터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공한다. 카메라 폰 사용은, 안정화되고 있는 몇몇 사용 양식을 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우 창발적인 행위이다. 전용 카메라의 사용 그리고 휴대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일어나는 사회적 공유들 모두와 다른 —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행위의 표시들이 있다(Kato, Okabe, Ito, and Uemoto 2005; Okabe and Ito 2003).

(Daisuke Okabe, Mizuko Ito, Everyday Contexts of Camera Phone Use: Steps Toward Technosocial Ethnographic Frameworks, 2006의 도입 부분을 번역했음. 전체 문서는 링크한 페이지에서 PDF로 제공되고 있음.)